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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혁신 기업의 길’

K모바일  LG경제연구원  
최근 IT 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화와 컨버전스의 변혁이 불어 닥치면서 혁신(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모든 기업들이 이노베이터를 꿈꾸지만,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게 효과적이며 차별적인 혁신 방안을 지속 확보하는 일은 어렵다.

기업들이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혁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의 흐름을 인식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혁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혁신의 길은 시간적인 선후발 여부에 관계없이 고객 가치 실현, 실질적 시장 선도,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 혁신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 갈 수 있는 혁신을 위해서는 ①창안적 혁신에 집중하기 보다 해당산업 분야 내부 혹은 외부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져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재조합적 혁신에 역점을 두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②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의 발굴, 물리적인 시장 창출 여부에 관계 없이 새로운 고객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의 관점으로 혁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③이제까지 기업들이 주로 기존 제품 서비스 자체의 혁신을 추구해 왔다면 고객 가치 혁신의 관점을 제품 서비스의 탐색·구매→배달→사용→보완→유지·보수→폐기·처분에 이르는 고객 경험 사이클 전반으로 확대하여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혁신으로 혁신의 관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④시간적 선발 진입 그 자체 보다는 실질적으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느냐에 혁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속적인 혁신 기업이 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Fast Follower’ 전략을 전면 수정하여 ‘First Mover’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다.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창안적 혁신을 이루어 내기는 힘들고. 기존 사업 역량이나 체질을 한꺼번에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Fast Follower’의 질은 분명히 바꾸어야 한다. 단순한 모방과 추종이 아닌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한 ‘Innovative Follower’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Ⅰ. 지속적 이노베이션의 필요성

최근 IT 산업을 중심으로 소위 ‘애플 발 충격’이라고 일컬어지는 스마트화의 변혁이 불어 닥치면서 혁신(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디지털 시대에 구사해온 Fast Follower(빠른 추종자) 전략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새로운 기술·제품을 창안하여 시장의 선발 진입(First Move)을 통해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되지 않으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화 시대에 접어 들면서 혁신의 중요성이 보다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째, 스마트화로 인해 S/W 기술 기반의 UI 및 기능 융합이 급진전되었기 때문이다. S/W 기술 중심의 융합은 이전의 H/W 기술간 융합에 비해 복제가 용이치 않아 기술·제품의 블랙 박스(Black Box)화가 가능하다. 즉 선발 혁신을 통해 자사 제품을 블랙 박스화할 경우 후발자들이 빠른 추종을 통해 이를 모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90년대말부터 디지털 시대가 본격 전개되면서 부품의 모듈화·표준화의 급진전으로 기술의 이식 및 복제가 가능해져 기술·제품의 범용화가 일어났다. 또한 다양한 기술·제품의 등장으로 고객 선택의 폭이 증대된 반면, 고객 니즈의 복잡화로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충분한 대비가 부족한 상태로 시장에 먼저 진출해 갖가지 난관을 맞는 것 보다는 시장·고객 니즈의 방향성이 명확해진 이후 빠르게 맞춤화한 제품으로 대응하는 Fast Follower 전략이 당시에는 유효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주도적 흐름이 H/W가 아니라 S/W 기술 중심의 융합으로 흘러가면서 Fast Follower를 통한 따라잡기가 쉽지 않게 된 측면이 있다.

둘째, 컨버전스를 통한 영역간 경계가 붕괴되면서 전자기기, 통신서비스, 컨텐츠·미디어, S/W 및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간의 전면 경쟁 또는 협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 단일 기업 중심의 경쟁 양상이 생태계 형성을 통한 기업군 간 경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즉 기업들이 혁신 역량을 기반으로 공급자·파트너를 규합하여 강력한 생태계를 선발 형성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진입장벽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개인화·맞춤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기존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대량 맞춤화)을 통한 제품·서비스 개발이나 고객 가치 충족 방법으로는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미세분화되고 있는 고객 니즈를 개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혁신의 파괴력과 그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는 반면, 자원의 한계, 역량과 체질의 차이, 기존 사업 기반 붕괴에 대한 우려 등으로 한 기업들이 자사가 속한 모든 사업 영역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때 혁신 기업으로 위상을 떨쳤던 기업들이 영속적으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 혁신의 선봉장이었던 제록스나 코닥, 워크맨 신화의 주역이었던 소니, 다이렉트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한 델 컴퓨터,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모토롤라, 디지털 시대를 선도했던 노키아 등 한 때 혁신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기업들의 빛이 바래고 있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90년대 중반 연이은 적자로 추락하던 애플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으로 이어지는 혁신 제품 또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내면서 최근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모든 기업들이 이노베이터를 꿈꾸지만,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게 효과적이며 차별적인 혁신 방안을 지속 확보하는 일은 어렵다. 과거 성공한 혁신 방안의 고수, 없는 것을 만들어 내려는 집착, 남보다 먼저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편견 등이 지속적인 혁신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신이란 과연 무엇이며, 기업들이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하에서는 혁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 새로운 흐름을 비교해 살펴봄으로써 최근 패러다임에 맞는 혁신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기업들이 혁신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흐름을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할 때, 혁신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지속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Ⅱ. 이노베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전통적으로 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혁신은 ▼기술 혁신을 통한 발명(혁신 대상과 가치 제공 방법 측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의 발굴(시장 창출 유형 측면), ▼기존 제품·서비스 공간 내 혁신(고객 가치 창출 방안 측면), ▼선발 진입(시장 진입 타이밍 측면) 등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하 혁신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대비되는 새로운 흐름을 제기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1. ‘기술 혁신을 통한 발명’ 보다는 ‘모방과 재조합적 혁신’

전통적으로 혁신은 창안적 혁신(Innovation as Invention) 관점에서 유무형을 막론하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며, 미래를 찾는 것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독창적인 답을 찾기 위해 ‘Think Outside of box’ 방식의 접근을 요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방과 혁신은 양립할 수 없으며 모방은 혁신의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경향도 있었다. 즉 모방이나 추종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은 차별적인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수많은 산업, 사업, 기술·제품들이 새롭게 창조되고 쇠퇴·소멸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최근 들어서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더구나 창안적 혁신의 경우 추진과정에서 엄청난 투자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해당 산업 분야의 내외부 세계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져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재조합적 혁신(Innovation as Recombination)이 보다 효과적인 혁신 방안으로 대두되었다(‘How Breakthroughs Happen’, Andrew Hargadon, 2003). 재조합적 혁신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어떤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폭넓은 조사 및 검색망, 포착된 기존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본질을 이해하는 역량, 자신이 속한 고객·시장의 요구에 맞게 적절히 커스터마이징(맞춤화)하는 능력 등 일종의 ‘혁신적 모방’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방은 혁신의 장애물이 아니라 혁신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접점이 존재한다. 오히려 혁신을 완성시키고 의미 있는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모방에 의해서이다. 혁신과 모방 기업 모두, 기업 내외부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정보·지식을 빠르게 포착·평가하는 한편, 다양한 사업 모델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 중에서 가장 유망하고 차별적인 대안 모델, 그리고 그 변형 및 조합 모델 등을 선택하고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기업이든 모든 사업 분야에서 창안적 혁신을 지속할 수는 없다. 즉 몇 가지 핵심적 사안에 창안적 역량을 집중하고, 모방 역량을 바탕으로 한 재조합적 혁신을 동시에 진행할 경우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Copycat’, Oded Shenkar, 2010). 여기서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모방과 재조합을 활용해 진정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의 여부는 그 대상과 가치 제공 방법을 어떻게 차별화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모방과 재조합의 대상을 먼곳에서

먼저 모방과 재조합의 대상을 차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모방의 대상을 자사가 속한 동종 산업, 같은 제품 범주, 같은 지역 환경 또는 선진 지역, 최신 트렌드 속에서만 집중적으로 찾아 왔으며, 자사가 속한 산업 내에서 평판 있고, 성공한 기업이나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를 중심으로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는 유사 사업 내 수많은 기업들의 벤치마킹 또는 모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를 모방할 경우 혁신으로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혁신적 모방, 재조합적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까이가 아닌 보다 먼 곳에서 그 대상을 찾아야 한다. 멀리 떨어진 시간 및 지역, 멀리 떨어진 타 산업 분야 사례, 과거 실패한 사례, 소규모 기업 등이 그 대상이 된다. 최근 호텔이 항공사의 고객 충성 프로그램을, 은행이 제조업의 플랫폼 표준화 모델을, 스낵 회사인 프리토레이가 자사의 유통 사업에 페텍스의 물류 기술을 모방·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유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과거에 실패한 제품·서비스라고 해서 이를 외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비슷한 컨셉의 제품일지라도 출시 타이밍에 따라 기존 제품의 성숙도, 인프라 여건 등이 달라져 그 성공 여부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애플의 아이패드를 필두로 한 테블릿PC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사실 테블릿PC는 90년대말 ‘웹패드’라는 명칭으로 사이릭스, 후지츠, 큐빅 등의 기업들이 선 보인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2000년대 초반 기존 ‘웹패드’ 컨셉에 씬 클라이언트(Thin Client) 기술을 접목한 ‘Mira’라는 명칭의 ‘휴대용 스마트디스플레이’를 내세워 e-home 전략을 추진한 바 있다. 홈 서버와 무선으로 연결된 ‘Mira’를 들고 가정 내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 검색, 음악감상, e-book 등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과거 ‘웹패드’ 제품들은 그 시장 형성에 실패했었는데, 그 실패 이유로는 배터리 성능이나 디스플레이 화질의 미흡, 터치 인식 민감도 미약 등의 기술적 불완전성, 불완전한 네트워크 인프라와 이용 가능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의 한계 등을 꼽고 있다. 과거 ‘웹패드’ 제품들의 실패 이유로 또 하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웹패드’ 제품들이 90년대말~2000년대초 당시 성장기에 있던 노트북의 대체재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노트북의 경우 당시 성능 향상이나 기능 확장이 급속히 이루어졌던 시기였으므로, 고객들은 단순·간편 기능의 ‘웹패드’보다는 노트북을 선호했던 것이다. 반대로 10여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노트북의 기술 발전이 어느 정도 성숙 단계에 이르자, ‘웹패드’와 비슷한 컨셉의 테블릿PC 제품들이 상당한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한 기술·제품 개발에 대한 모방이나 재조합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업·산업 간 융합, 사업모델 간 융합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술 자체를 상품화하기보다는 기술을 기존 비즈니스에 접목시켜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활용하는 것도 혁신의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일례로 GE는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등의 사업 분야에서 가스터빈, 엔진, 정밀의료기기 등에 센서를 부착해 해당 기기에 대한 고객의 실시간 사용 내역 및 고장 상태 등의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기기에 대한 고객의 사용 습관을 분석하여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기기 개발 및 서비스를 선 발굴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며, 기기 고장의 리스크를 사전 감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영국의 대형 유통회사 Tesco는 매장 내 위성항법시스템과 고객의 스마트폰 간의 연동을 통해 고객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매장 위치 찾기, 원하는 제품 쉽게 찾기, 고객의 쇼핑 리스트에 맞는 최적의 이동 경로 제공, 스마트폰 카메라로 제품 바코드를 스캔하면 진열대에서 즉시 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쇼핑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혁신 서비스인 것이다.

독특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모방과 재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서비스가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기존 제품·서비스와 비교해 차별적이며, 독창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혁신은 그 과정에 있어 새로운 것의 창안을 의미하기보다는 기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모방·재조합하더라도 사후적 고객 가치 측면에서 독특함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MP3 기기 분야에서 애플은 후발 기업으로 진입하였으나, MP3 기기와 음원 컨텐츠 제공 서비스를 결합한 아이팟·아이튠즈 모델을 선보이며 혁신을 이루어 냈다. 사실 아이튠즈 서비스는 과거 음원 컨텐츠 다운로드 사이트인 냅스터의 서비스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주요 음원 컨텐츠 사업자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고객의 음악 이용을 합법화시킴으로써 냅스터와의 차별화를 이끌어 냈다. 또한 기기의 성능 향상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음원 컨텐츠를 다양하게 확보하여 MP3 기기에서 편리하게 이용하게 함으로써 MP3 기기 분야의 선발자들에 비해 독특한 고객 가치를 제공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이패드 또한 제품 컨셉과 Form Factor(크기, 디자인 등) 측면에서 과거 ‘웹패드’ 제품들을 모방했으나, 빠른 부팅과 10시간 이상 배터리 사용, 직관적인 멀티터치 UI, 무엇보다도 다양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의 편리한 사용 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던 것이다.

유럽의 의류회사인 자라는 다른 의류회사와 마찬가지로 최신의 패션 트렌드와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모방해 왔다. 그러나 자라의 혁신성은 다른 기업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는 데 몇 달이 걸리는 데 비해, 그 기간을 2~4주 정도로 크게 단축시킨다는 데 있다. 우선 자사의 매장에서 소비자의 수요 니즈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디자이너들에게 신속히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도 과거 자동차 산업에서 주로 사용했던 ‘적시생산방식’을 도입하여 입하된 재료가 곧바로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의류 제품에 대한 모방에도 불구하고 자라가 혁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방식을 통해 ‘최신 유행 의류를, 남보다 더 빨리,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한다는 차별적 가치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2.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발굴’ 보다는 ‘새로운 고객 가치 창출’

전통적으로 혁신은 새로운 고객·시장을 발굴해 신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부는 맞는 측면이 있으나, 신 사업 영역을 발굴하는 것만이 혁신은 아니다. 혁신의 유형은 그 시장 창출 유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이다. 이는 기존 시장에 유사한 편익이나 효용을 제공하는 제품·서비스가 없어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출하는 유형이다. 전자 산업 분야를 예로 들면 ▲과거 여가 선용 차원에서 개발된 라디오, TV, 카셋트, MD(워크맨), VCR, 카메라, 캠코더 등의 다양한 AV 기기, ▲일상 생활의 편의성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자동청소기 등의 백색가전, ▲정보화·개인화 트렌드에 따른 PC, 노트북, PDA 등의 컴퓨팅 기기, ▲ 원격지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화, 휴대폰 등이 그 사례이다.

둘째, 시장 세분화형 혁신으로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이 만들어 낸 개별 시장을 세분화하여 이를 확대시키는 혁신 유형이다. 기존에 유사 시장이 존재하지만, 세분 제품·서비스별로 각기 전문화된 편익을 제공하면서 차별화하는 유형이다. 물론 기존 제품·서비스를 일부 대체할 수도 있으나 기존 시장을 세분화하여 확대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휴대폰 분야에서 과거 카메라폰, 뮤직폰, 캠코더폰 등 특정 기능별로 세분화되어 온 것이 그 사례이다.

셋째, 기존 시장 대체형 혁신이다. 기존 시장에 유사한 편익을 제공하는 제품·서비스가 있지만, 기술 발전에 따른 기능·성능 향상이나 사용 편의성 제고 등을 통해 보다 고차원적인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제품·서비스 시장을 대체하는 유형이다. 컬러TV, LCD TV 등 평판 TV, LCD 모니터, MP3, 디지털카메라, 최근의 스마트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대체형 혁신은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에 의해 시장이 완성된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시장을 비연속적인 또는 와해적인 방법으로 대체 또는 재구성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기존 제품·서비스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소비자 니즈에 대응하여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이 일어난다. 이러한 카테고리의 제품·서비스가 확대되면서 특정 용도에 대한 강한 니즈가 새롭게 발생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장 세분화형 혁신이 발생한다. 이후 기존 제품·서비스들이 제공해 온 편익의 수준을 향상시키면서 비연속적 기술로 대체하는 시장 대체형 혁신이 등장하게 된다. 최근 들어 웬만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상품화되었고, 고객들의 니즈 또한 극히 까다로워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고객·시장 영역을 창조하는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이 일어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혁신은 기존 시장의 대체와 더불어 일부 신규 시장 영역을 창출하는 형태, 그리고 기존 시장 대체와 시장 세분화가 동시 진행되는 형태 등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혁신의 범위를 전통적인 신규 시장 창출형에 국한하기 보다는, 기존 시장 세분화와 대체형을 포함하여 보다 폭넓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즉 물리적인 시장 창출 유형에 관계 없이 새로운 고객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관점으로 혁신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제품·서비스들이 해결하지 못한 일상 생활 및 업무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소비자의 생활에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고객 가치 창출이며, 이것이 바로 혁신인 것이다.

3. ‘기존 제품·서비스 공간 내 혁신’ 보다는 ‘고객 경험 사이클 전반의 혁신’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서비스가 가지는 본래의 특징 또는 용도를 중심으로 한 차별화에 관심을 가져 왔다. 기업들은 기존 제품·서비스 범위 내에서 그 효용이나 편익을 향상시키는 방향의 고객 가치 혁신을 주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고객 가치의 변화 양상을 감안할 때 기존 제품·서비스 공간에 머물러서는 새로운 고객 가치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고객의 관심사가 해당 제품·서비스의 본질적인 측면을 벗어나 관련된 다른 부분으로 이전되면서 기존의 전형적인 고객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 가치의 지속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전히 해당 제품·서비스 본래의 특징이나 편익에 초점을 둔 채, 고객 가치를 규명하거나 혁신 기회를 찾는 우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기존 제품·서비스 공간에서 벗어나 고객이 진정 원하는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 가치 혁신의 관점을 고객 경험 사이클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업무나 생활 상의 필요에 의해 어떤 제품·서비스를 구매하고 사용하려는 니즈가 발생하면서부터 해당 제품·서비스에 대해 일련의 경험 과정을 겪는다. 즉 해당 제품·서비스의 탐색·구매→배달→사용→보완→유지·보수→폐기·처분에 이르는 6단계의 경험 사이클이 그것이다. 이러한 6단계의 경험 사이클은 해당 제품·서비스와 관련하여 고객 입장에서의 총체적인 경험 과정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고객의 문제점 현안, 잠재적 애로 사항이나 추구 가치 등이 무엇인지를 잘 규명할 경우 진정한 혁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탐색·구매 단계에서 고객이 추구하는 효용 가치를 살펴보면, 최근에는 정보 획득의 편의성과 스피드를 중시하여 정보에 접근하는 시간이나 단계를 단축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체험이 바탕이 된 실효성 있는 정보 획득을 선호하여 자신이 직접 해당 제품을 사용해 본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 정보를 획득하고 싶어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최근 e-Marketplace를 통한 소비자들의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고객 니즈를 잘 반영하여 시스템을 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e-Marketplace에서는 다양한 제품 및 제품 번들링 옵션, 사용자 중심의 편리한 메뉴 구조 등 정보 탐색·접근이 용이하고, 사용 후기 활성화를 통한 풍부한 간접 사용 체험 등으로 실제적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고객 경험 사이클 상의 문제점 포착 및 해결

경험 사이클 상의 혁신 사례로, 정밀의료기기 사업을 수행하는 GE메디컬시스템즈를 들 수 있다. GE는 대상 고객인 병원의 의료기기에 대한 주된 관심사가 H/W 의료기기의 정밀도나 성능보다는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에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즉 사용 단계에서 정밀 의료기기의 복잡한 사용법으로 인한 업무 생산성 저하 문제, 유지·보수 단계에서 갑작스런 결함 발생시 커다란 리스크 존재 등이 고객인 병원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었다. 먼저 사용 단계에서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 GE는 의료기기 및 의료사고 등에 대한 지식 정보 Pool을 구축하고, 복잡한 의료기기 사용법을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유지·보수 단계에서도 혁신을 통해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즉 의료기기에 센서를 부착하여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 결함이나 문제점, 성능 변화 등을 실시간으로 지속 감시하면서 기기 고장 등의 리스크를 사전 진단하고, 문제 발생시 능동적·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식료품 전문 체인점인 ‘Wegmans Food Market’의 혁신 사례도 좋은 예이다. 체인점인 ‘Wegmans Food Market’은 고객들이 식료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 진정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먼저 구매 단계에서의 고객 니즈 충족을 위해 ‘Wegmans Food Market’은 고객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취향에 맞는 식료품을 구매하고, 식단을 꾸밀 수 있도록 직원들이 관련 정보의 제공과 더불어 상담·추천하는 서비스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와인을 고를 때 관련 분야의 직원이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를 가이드해주거나, 해당 와인과 잘 어울리는 스낵, 고기 등을 추천해 주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와인 담당 직원에 대한 프랑스 보르도 현지 견학, 치즈 담당 직원에 대한 스위스 낙농업 현지 견학 등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식료품에 대한 전문 현장 교육을 시키고 있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특별 매장을 마련하고, 상담 서비스 코너를 운영하는 시스템도 도입하고 있다. 고객들이 사용상의 실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전문 요리사가 식료품을 재료로 한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고객이 직접 맛을 보고 구매하게 하는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과거 애플의 아이팟·아이튠즈 모델도 고객 경험 사이클 상의 문제점 해결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해 볼 수 있다. 애플은 MP3 기기를 사용하는 고객의 관심사가 MP3 기기의 획기적인 기능·성능 향상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음악을 신속하게 획득하는 데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즉 사용 단계에서 구매한 컨텐츠를 MP3 기기로 다운로드 받는 데 걸리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 보완 단계에서 선호하는 음악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음원 사이트를 검색해야 한다는 점 등이 고객의 겪고 있는 애로 요인들이었다. 애플은 보완 단계에서의 고객 가치 혁신을 위해 소니, EMI 등 주요 음원 컨텐츠 회사와의 협상 및 장기 계약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악을 확보하는 한편, 온라인 사이트 아이튠즈 개설을 통해 확보된 음원을 고객에게 직접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또한 사용 단계에서의 혁신을 위해 아이튠즈 사이트와 MP3 기기 간의 동기화 프로그램을 구축하여 고객들이 ‘One Click’으로 원하는 음원 콘텐츠를 자신의 MP3 기기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4. ‘선발 진입’ 그 자체보다는 ‘실질적인 시장 선도’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스마트화로 인해 가장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First Mover = Innovator’라는 공식이다. 그러나 사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으로 이어지는 애플의 최근 혁신 제품들은 해당 사업 분야에서 모두 후발 제품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 제품과는 다른 혁신성 때문에 선발자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혁신 상품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출시된 제품·서비스가 아니라, 시장의 실질적 성립을 가져온 최초의 제품·서비스, 의미있는 시장을 창출한 선발 상품이 혁신 상품이다.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측면에서 선·후발 상품 중 어느 것이 혁신을 이끄는 데 유리한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의의 대립이 있어 왔다. 현재로서는 선·후발 진입의 이점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해당 사업·산업의 특징, 해당 시기의 인프라 여건 및 고객 수용도, 관련 선·후발 사업자의 역량 등에 따라 선·후발 진입의 효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 봤던 혁신의 시장 창출 유형별로 선·후발 진입의 효과를 달리 분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선발 진입한 기업보다는 뒤늦게 진입한 후발자들이 시장을 지배했던 사례가 상당수 존재했다. 이는 선발자들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고객 니즈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고, 시장 표준 또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선발 진입한 시장 개척자와 실질적인 대중 시장을 창출한 후발자를 살펴보자. PC 분야에서 시장 개척자는 애플이었으나, 실질적인 대중 시장 창출은 후발자인 IBM이었다. 복사기 분야에서의 제록스와 캐논, VCR 분야에서의 암팩스와 JVC,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의 아타리와 닌텐도, 온라인 서점 분야에서의 찰스 스택과 아마존, 일회용 기저귀 시장에서의 존슨앤존슨과 P&G, PDA 분야의 애플 뉴턴과 팜파일럿 등을 마찬가지 사례로 들 수 있다. 최근 스마트폰의 경우는 그 연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3년 IBM이 개발·출시한 ‘Simon’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키아도 1996년 ‘커뮤니케이터 9000’을 시장에 선보인 이후, 해당 컨셉의 스마트폰을 지속 개선하면서 출시해 왔었다. 그러나 실질적 시장 성립을 가져온 제품은 2002년 출시된 RIM의 ‘블랙베리’ 모델이었고, 대대적인 혁신을 가져온 제품은 잘 알다시피 바로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이 만들어 내는 시장은 물리적인 시장을 창출하는 개척 활동과 실제 시장을 확대·육성하는 활동이 분리된다는 견해가 있다. 최초 진입 장벽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진입할 수 있지만, 기술의 완성도 미흡과 고객 니즈의 불확실성 등으로 다양한 제품·서비스의 등장과 소멸이 반복된다. 이후 해당 사업·산업의 표준이 되는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으로 해당 시장이 통합되면서 대중시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Fast Second’, Markides 외, 2005).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제품·서비스의 수명주기가 극히 짧아지고, 많은 기업들이 모방을 통한 Fast Follower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생태계 규합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선발을 통한 혁신의 유효성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규 시장 창출형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입시 물리적인 선·후발 여부보다는 단번에 시장의 표준을 만들어 대중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혁신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객 니즈의 불확실성 수준과 더불어 관련 인프라나 주변 여건의 성숙도 등을 면밀히 파악한 후 선·후발 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선발 진입한 경우에는 진입장벽을 치고 선점한 고객의 전환비용을 높임으로써 후발기업의 시장을 축소시켜야 한다.

둘째, 시장 세분화형 혁신의 경우 우선적으로 선발 진입을 추진해야 할 유형이다. 시장 세분화형 혁신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서비스 시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기존 상품 컨셉이나 게임의 룰을 파괴하기보다는 전문화하여 보완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진입장벽이 높지 않거나,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편이다. 이를 적절히 공략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선발 진출하여 선발자 프리미엄을 누리고 재빨리 다른 제품·서비스 분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피드가 필요하다. 단 고객 니즈를 뛰어넘는 과도한 수준의 기술 채용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체형 혁신의 경우 자사가 기존 제품·서비스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 지위와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선·후발의 이점이 달라질 것이다. 자사가 기존 시장에서 선도 기업으로 포지셔닝되어 있을 경우, 선발을 통한 대체형 혁신은 자사의 기존 사업 기반을 단기간 내 와해시킬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따라서 기존 시장의 선도 기업들은 와해적 혁신 기반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사업 기반과는 독립적인 사업단위의 구축, 소규모 조직 운영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시장 경쟁 기반이 변화하는 시점이나 영역을 포착, 대체형 혁신 제품·서비스를 활용해 신규 시장부터 개척한 후, 이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LCD 기업들이 OLED 기술로의 대체 또는 전환 속도를 결정하는 데도 이러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우선 LCD 산업이 성숙 조짐을 보이는 현 상황에서 OLED로의 전환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새로운 시장 영역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반면 기존 LCD 분야의 강자인 국내 기업 입장에서 OLED로의 전환이 급속히 이루어질 경우, 기존 LCD 인프라의 조기 상실과 OLED에 대한 또 다른 막대한 투자 비용 부담이 있는 것이다. OLED로의 전환을 추진하더라도 당분간은 기존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프리미엄급 중심의 대체와 아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발굴하는 방안을 추진하여, OLED와 LCD를 상당 기간 공존시키는 것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시장에서 후발 주자 또는 신규 진입자일 경우, 선도 기업들이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 선발 진입을 통해 기존 경쟁 방식을 파괴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애플이 그 동안 혁신 제품·서비스를 내놓았던 MP3 시장, 휴대폰 시장, 테블릿 시장 등은 애플 입장에서는 모두 신규 진입 영역이었다. 애플의 경우 기존 사업 기반의 약화나 붕괴에 대한 우려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컨셉의 제품·서비스, 다른 게임 룰로 마음 놓고 차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대체형 혁신의 타깃이 되는 기존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와 이와 결합한 생태계 파트너들이 굳건하다면, 우선은 전면전을 회피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경쟁자가 기존 시장을 사수하거나 대체형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항전하여 소모적 경쟁이 벌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틈새 시장 공략으로 우회하거나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Ⅲ. 시사점

지금까지 혁신에 대한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면서, 단일 제품·서비스 차원의 혁신이 아닌 영속적인 혁신 기업으로 자리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창안적 혁신보다는 혁신적 모방과 재조합적 혁신의 활용, ▼물리적 신사업 영역 창출보다는 고객 가치 창출 측면의 접근, ▼기존 제품·서비스 공간내 혁신보다는 고객경험 사이클 전반의 가치 혁신, ▼시간적 선발 진입보다는 실질적 시장 성립의 선도 등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영속적인 혁신을 위해 기업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추가적으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에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나, 선발을 통한 창안적 혁신의 중요성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IT 기업의 경우 최근 스마트화가 급진전되면서 관련 생태계의 변화, 컨텐츠·애플리케이션 및 S/W 등과 같은 새로운 경쟁 요소의 이입과 단순 제품 제조 및 판매를 넘어선 다양한 사업 모델의 등장 등으로 차별적 경쟁 방식 설정과 사업 역량 확보에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 물론 현 상황에서의 경쟁 기반 확보를 위해 이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소재·물성 기술 혁명, 인지·인식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또 한번의 H/W 혁신이 촉발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플랙서블(Flexible) 및 폴더블(Foldable) 기술, 고해상도 프로젝터(Location-Free), 홀로그램, 나노 소재를 활용한 접는 디스플레이 등 소재나 물성 혁명을 통한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이 개발된다면 전자 기기의 Form Factor(크기, 무게, 디자인 등)를 자유롭게 가져가면서 대화면이나 입체감 있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인지·인식 기술 측면에서는 버츄얼 키보드(Virtual Keyboard), 인공지능, 자연어 음성 인식 등의 혁신 기술이 보다 발전한다면 전자 기기의 휴대성 측면의 자유도를 보장하는 한편, 다양한 기능들을 간편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것이다. 따라서 국내 IT 기업들은 향후 H/W 혁신을 가져올 와해적인 기술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반드시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조직 역량 측면에서는 기술이나 시장 변화에 끊임없이, 신속히 부응하면서 경쟁자보다 한 발 앞서 혁신할 수 있는 스피드와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향후의 고객·시장 환경은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 변화의 속도 또한 더욱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피드와 유연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요한 기술 또는 고객 니즈 변화의 신호를 사전적으로 감지·포착할 수 있는 시장 센싱(Market Sensing) 능력이 필요하다. 소비자와 무한대로 접촉할 수 있는 오픈된 채널 구축, 인지된 소비자 니즈를 컨텍스트 차원에서 이해하는 지식·정보 시스템 확보 등이 시장 센싱 능력 확립에 필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시장 센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할 때 필요한 내부 자원을 신속히 재배치하고, 외부 자원을 규합할 수 있는 유연한 자원 재배치(Resource Re-allocation) 역량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내부에서 다양한 대안들에 대해 병행 준비하는 한편, 필요한 역량을 가진 공급자·파트너 네트워크를 先 구축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목표나 방향성이 명확해진 이후, 旣 확보된 자원의 운영 효율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달려 가는 능력은 우수한 편이다. 즉 개발 스피드나 생산 리드 타임 단축 등 사후적인 시간 압축 스피드 측면에서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혁신은 변화의 방향에 대해 남보다 한 발 앞서 포착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유연하게 기존 역량 기반을 바꿀 수 있는 사전적인 스피드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혁신 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Fast Follower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First Mover로 전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수 차례 강조했듯이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창안적 혁신, 선발 혁신을 이루어내기는 힘들고, 기존 사업 역량이나 체질을 한꺼번에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일부 영역에서는 Fast Follower 전략을 선택적으로 견지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Fast Follower의 질은 분명히 바꾸어야 한다. 단순한 모방과 재조합이 아닌 혁신을 만들어 내는 이른바 ‘Innovative Follower’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조준일 연구위원]

 

자료원 : http://www.kmobile.co.kr/k_mnews/news/news_view.asp?tableid=IT&idx=352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