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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사랑했던 기자

김대중 대통령을 사랑했던 기자 
[인터뷰]‘김대중 자서전’ 집필한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2010년 08월 01일 (일) 
 
취임사에서 “모든 영광과 축복을 국민에게 돌린다”며 목이 메던 김대중 대통령, 그는 눈물이었다. 국민의 가슴을 끓게 했고, 그의 지지자를 끊임없이 울렸다. 김택근(사진·56)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취임하는 대통령에게 “나라를 위해 온몸을 태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사람들을 목메게 해달라”고 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는 인동초 김대중을 참 좋아했다.

평소 존경하던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집필을 제안받은 김 논설위원이 선뜻 그러겠다고 한 것은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한평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 사람,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얘기하는 이가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 전 논설위원은 그의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달 29일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을 맡은 김 논설위원을 지난 30일 서울 경희궁 뜰에서 만났다. 그는 1년이 지나서야 김 전 대통령 서거 추도사와 지석에 새겨진 내용이 그의 손을 거쳤음을 처음 밝혔다. 언론에 공개된 일기를 발췌한 것도 그였다.

추도사·지석 글도 써…언론 공개 일기 글도 그의 손 거쳐
2004년 비서관 찾아와 대통령 뜻 전달… 41차례 직접 대면 구술
이임 때 '국민들 떠나는 대통령 아쉬워 울게 해주길'
퇴임 때 '할아버지로 돌아가 평범히 살길' 칼럼

     


  ▲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치열 기자 truth710@  

 
- 첫 정본 자서전인 ‘김대중 자서전’이 6년3개월여 만에 출간됐다. 작업 기간이 길었던 만큼, 소회도 남다를 것 같다.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김 전 대통령의 평생을 글로 옮기면서 이분은 정말 진실하다 생각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 떨어져도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오히려 배운 게 많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 역사와 국민에 대한 믿음, 진실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는 감동적이었다.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나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내가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집필을 맡게 된 배경과 과정이 궁금하다.

“지난 2004년 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인 김한정, 최경환 비서관이 ‘대통령께서 한번 뵙고 싶어한다’며 찾아왔다.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두 비서관이 자서전 얘길 꺼내며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깜짝 놀랐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데 대통령이 내 글을 읽고 있었다니! 그 뒤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류에 대해 얘기하셨다. 당시는 대통령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때였다. 퇴임 뒤 권력은 없고, 몸은 병들어갔다. 절망에 휩싸여 있을 법도 한데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희망을 얘기했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안심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김대중 자서전> 작업이 시작됐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녹취했다. 이를 정리하니 200자 원고지 5600장 분량에 달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글도 읽었다. 인간 김대중의 삶과 세계를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참 좋아했다. 그가 김 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썼던 칼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1998년 2월 26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날짜 신문에 <대통령 김대중>이란 데스크칼럼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대통령 김대중에게 이제는 지지자들과 '결별'할 것을 주문했다. 그들은 이제 '지지자'들이 아니라, '국민'인 까닭에.

그래서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인기를 버릴 것, 함부로 구호를 외치지 말 것, '인의 장막'을 걷어낼 것, 그리고 더이상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할 것. 다만 그의 "지지자들을 딱 한번만 더 울게 하라"고 했다. "이임하는 노(老)대통령이 못내 아쉬워 울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랬던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겪었던 곡절과 좌절은 그에게도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는 그런 심경은 김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쓴 <김대중 대통령께> 와 퇴임을 앞두고 쓴 <할아버지 김대중>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김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퇴임을 앞둔 노대통령에게는 "당신의 역할도 끝났다"며 "이제는 할아버지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아, 정말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절감하면서…".

71년 납치사건 계기로 호감 “어떤 인물인데 저렇게까지 할까”
집필자로 기자 선택 “미문 경계”… 대통령 일기에 “글 잘쓴다 칭찬” 참 기분 좋아

- 김 논설위원의 글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호감을 느끼게 됐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인물이기에 정권이 저렇게까지 할까’하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돼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김대중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았다. 대통령께서 자서전 집필자로 기자를 선호한 것은 미문을 경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왜 내게 자서전을 부탁했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대통령께서는 그런 얘길 안 하셨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일기에는 ‘김택근 사장(당시 김택근 위원은 경향신문 홈페이지 운영사인 경향닷컴의 대표였다)은 글을 잘쓴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대통령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김 전 대통령은 김 논설위원에게 자서전은 △공정하게 기술할 것 △남길 게 있다면 후세를 위해 남겨 줄 것 △소설처럼 재미있게 써 줄것을 당부했다. 책 여는 말을 보면 ‘나의 삶이 최선을 다했다고 기록됐으면 한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김 논설위원은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자서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1부 집필을 마치고 2부 집필을 하는 동안 김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처음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입원하셨을 때인 그해 7월22일 일식이 있었는데, 달이 해를 삼키는 일식이 있으면 큰 인물이 돌아가신다는 말이 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덜커덕 돌아가셨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낭독했던 추도사는 그가 직접 쓴 것이다. 지석에 쓰인 문안도 그가 작성한 것이다. 언론을 통해 소개된 김 전 대통령 일기 일부를 발췌한 것도 그였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그는 차분히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그는 장례를 끝내고서야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서전 3대 조건, 공정성·후세 위한 유산· 소설같은 재미
“더 나은 세상 위한 삶 담기길 기대”
햇볕정책 계승한다던 MB에 대한 실망 “사람 잘못 봤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대중 자서전'에는 현 정권에 대한 쓴소리도 담겨 있는데.
“김 전 대통령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말을 6번 했다. 김 전 대통령도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자라면 햇볕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하자 햇볕정책은 후퇴했다. 용산참사를 보면서는 인권 후퇴를 걱정하셨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잘못봤다며 그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이 지적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북관계 경직 △서민경제 파탄 △민주주의 후퇴였다.
김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외교다. 그 중 가장 신경 썼던 것이 바로 중국과의 관계였다. 한국은 중국,러시아,일본 미국의 가운데 있는 유일한 나라다. 대통령께서는 우리가 열강의 먹이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물 한컵 들 힘조차 없었지만 행동하던 양심 외치던 김 전 대통령
퇴임 후 서거까지 70여 일 담아 평전 기획 “인간 김대중 담을 것”

그는  김대통령의 서거 2달여 전인 지난해 6월11일,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강연에서  피맺힌 심정으로 호소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닥쳤을 때 내가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지하에 계신 의사 열사들깨서 뭐라고 하겠는냐”며 “나는 죽을 때까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물 한 컵을 들 힘도 없었다.

<김대중 자서전> 집필을 끝낸 김 논설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전을 계획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서거할때까지의 70여 일은 자서전에 담기지 않았다. 김 논설위원은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것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평전이 갖는 객관의 견고함에 매이지 않고 인간 김대중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논설위원은 자신을 ‘김대중을 사랑한 기자’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이 없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면서도 현실을 비켜서지 않았던 김대중을 그는 참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

김 논설위원이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얘기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서성였다. 그 나비는 김 논설위원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돌고는 다시 날아가 버렸다. 그는 자칭 '전직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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