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방송과 통신의 융합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당시 방송·통신 겸영의 무궁화위성을 쏘아올리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정작 방통 융합을 추진할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에야 출범했다. 대표적인 방통 융합 서비스인 인터넷TV는 중국보다 늦게 지난해 말에 개국했다. 그만큼 정치권 내에서, 또 방송·통신 업계 간에 진통이 심했다.
신방 겸영, 방송·통신 융합 … 컨버전스 대비 제때 못하면 미디어 산업 정체는 불 보듯 |
그러나 신문과 방송의 겸영, 대기업 참여를 허용토록 한 방송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논쟁 중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시행 중인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방송 장악의 악법’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국·영국·독일 정부가 자기 나라의 언론을 장악하려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 대기업의 언론 참여를 허용했을까. 가까운 일본도 미디어 그룹이 출현할 수 있도록 2007년 방송법을 개정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문화 주권’을 외치며 방송 시장 개방에 반대한 프랑스마저 지난해부터 미디어 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다. 디지털 전환과 방송 시장 개방을 게을리할 경우 자국의 미디어 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 신문과 방송의 겸영, 대기업의 미디어 참여, 글로벌 미디어 기업 출현을 위한 제도 마련을 의회에 특별 주문할 정도다. 프랑스 정부는 3조 유로(약 5600조원)에 달하는 세계 디지털 경제시장에서 자기 나라가 얼마나 왜소한지를 지적했다. 또 디지털 컨버전스로 10년 전의 두 배로 큰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추세에 제때 부응하지 않으면 300억 유로 시장 규모에 6만 명을 고용하는 프랑스 미디어 산업은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글로벌 디지털 컨버전스는 이미 ‘쓰나미’처럼 우리 곁으로 몰려든다. 이런 와중에 미디어 관련 기업과 시장이 알아서 생존하라고 방치하고, 글로벌 추세에 눈을 감는 나라는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라고 볼 수 없다. 특히 프랑스가 고민하고 처방을 내리는 방향은 우리나라의 방송 관련 법안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대도시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지상파 DMB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됐다. 이미 방통 융합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디지털 경쟁력이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로 정보 전달 매체가 다양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쉽사리 출현할 만한 여건을 갖춘 방통 융합 시대에 우리나라가 뒤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 정보기술(IT)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이 앞장섰다. 이후 인적 자원과 인터넷 기반, IT 기술의 3박자를 갖추면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IT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런 나라가 세계 디지털 경제의 진정한 주역이 되려면 휴대전화를 뛰어넘어 디지털이 활개치는 더 큰 시장인 미디어 산업을 일궈야 한다. 만일 지금 방송과 통신의 컨버전스 벽 정도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손 안에 들어가는 휴대전화기 강국 정도로 세계인에게 각인될 것이다.
* 본 칼럼은 중앙일보 2월 24일자(화) S01면에 게재된 글입니다.
출처 : KI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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