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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의 샘터........о♡/마케팅·경영전략

'고객 만족'소용없어… 브랜드 선택 95%는 '습관'이다

만족한다고 대답한 고객 8% 정도만 재구매
아이팟은 좋은 디자인으로 습관화에 성공
기업들, 새로운 습관 창출에 마케팅 자원 쏟아부어


언제부터인가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일명 CS) 경영'이란 용어가 기업 경영의 당연한 지침처럼 자리잡아 왔다. 직감적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곰곰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객의 만족도는 구매한 제품이 과연 사람들의 기대치를 능가하느냐로 가늠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대 이하면 불만족이라 평가되므로, 그 기대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기업이 어렵게 기대수준을 충족해도 고객들이 다음 번에 기대 수준을 다시 높인다는 데 있다. 멀리 홍콩에서 부친 특송 우편이 다음 날 아침 서울 사무실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은 생각해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 그 정도의 우편 서비스에 감동할 사람은 없다. 하루 만에 배달되는 것은 당연한 기대수준이 된 것이다. 기대수준이 날로 높아지면서 까다로워진 고객들의 불평이 끝이 나지 않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고객 만족도가 재구매와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서 "브랜드에 만족했다"고 응답한 고객들에게 "그렇다면 미래에 이 브랜드를 다시 구매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면, 말로는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구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건만 좋다면 경쟁사의 제품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소비자들이다.

CS 전문가인 닐 마틴(Neale Martin)에 따르면, 만족한다고 대답한 고객 중 기껏해야 8% 정도가 실제로 재구매를 한다. 거꾸로 불만족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브랜드의 구매를 기피하지도 않는다. 고객이 어떤 항공사의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 해도 마일리지가 누적되어 있으면 다른 항공사로 쉽게 옮겨가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객의 만족도가 참고는 될지언정, 경영의 초점을 고객만족(CS)에 맞추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새로운 깨달음이다. 그래서 이제는 기업의 관심이 CS에서 CH(Customer Habituation·고객 습관화)로 옮겨 가고 있다.

심리학자 수잔 피스크(Susan Fiske)는 사람들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 칭한다. 두뇌가 정보 처리를 할 때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는데, 되도록이면 그 에너지를 절약하려 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도 그 제품을 새로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던 대로, 즉 습관에 따라 구매한다.

언젠가 한 번은 의식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의식적으로 습관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더 편리한 행동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새로운 습관을 형성시키고, 이를 유지시킬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부심한다. 마일리지가 대표적이다. 많은 피자 가게가 있는데도 어떤 고객이 유독 한 피자 가게에서 계속 주문하는 것도, 같은 주유소를 계속 가게 되는 것도, 늘 사용하던 신용카드를 으레 쓰게 되는 것도 마일리지 적립 등의 장치로 유도한 습관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도 습관화에 한몫한다. 애플이 아이팟(iPod)을 내놓았을 때, 크지도 않은 MP3 시장에서는 이미 선두 주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팟은 앞선 경쟁사의 제품보다 비쌌고, 저장 용량은 적었다.

그러나 아이팟의 기발한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습관에 숙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이팟의 클릭 휠(click wheel)은 손바닥만한 MP3의 볼륨 조절과 음악 탐색을 손쉽게 하는 천재적인 해결책이었다. 별도의 사용 설명이나 연습 없이도 사용법을 익히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이팟의 사용법이 그렇게 직관적이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MP3에 길들여지는 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폭발적인 시장 창출은 늦어졌을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이 좋은 원두나 감성적 접근 때문이라는 분석들도 일리가 있지만, 기실은 편의성을 통한 습관의 형성이라 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들은 서로 가까이 위치시키지 않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강남역 4거리에만도 5개의 매장이 있다. 고객이 길을 건너는 게 불편하다고 판단되면 기존 점포 바로 건너편에도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는 전략 때문이다. 그 결과 찾기 쉽고 접근하기 쉬운 스타벅스 매장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스타벅스를 가게 되며, 심지어 하루라도 거르면 마음이 불편하게까지 된다.

기업들은 때로 기존의 습관을 파괴하여 새로운 습관을 창출하는 데 마케팅 자원을 쏟는다. 조사기관인 AC닐슨은 소비자들이 습관에 의거하여 구매 결정하는 것을 '오메가 룰(Omega rules)'이라 하고, 습관에 도전하여 의식적인 평가를 하게 되는 순간을 '델타 모멘트(Delta moments)'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기존의 우유를 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저온 살균 방식을 상기시킨 파스퇴르 우유나, 침대를 가구처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습성을 깨뜨리기 위해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한 에이스 침대는 델타 모멘트를 창출하여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은 사례이다.

습관을 창출하는 것이 마케팅 장치이든, 디자인이든, 편의성이든, 델타 모멘트이든 브랜드 선택의 95% 이상이 습관에 의한 구매이다. 시장에 변화를 주고 싶은 기업은 '습관은 습관에 의해 정복된다'는 수도사 토마스 아켐피스의 말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기고자 :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 교수
발행일 : 2008년 12월 0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