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사업, 대기업이 나설 때다기자수첩
2007.06.29 17:54:42 | |
서울신문 산업부 기자 정기홍 hong@seoul.co.kr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 이는 우리 신체 부위에서 가장 많이 쓰여 없어서는 안 될 감각 부위다. 많이 쓰다 보니 그 중 가장 피곤한 신체들이기도 하다. ‘눈과 귀가 되자’, ‘손발이 되자’란 문구가 베품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감각에서 ‘오감(五感)’이 나오는 것 아니던가….
이들이 제 기능을 못하면 당연히 불편이 뒤따른다. 남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2백만 명 정도다. 이 중 지체장애인이 가장 많아 1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뇌병변, 청각장애인도 얼추 10만∼20만 명이 된다는 통계다. 이외에도 정신지체·호흡기·정신·신장·언어·발달·안면장애인 등이 있다. 불편한 이가 참으로 많기도 하다.
이들은 이같이 다양한 분포 속에서 사회 주류인 정상인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살아간다.
무관심-‘우리는 몰랐다’
필자는 최근 눈과 귀, 손발의 소중함을 느낀 자리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선정한 IT 보조기기 보급제품 44개를 내놓은 자리였다. 모두 90개가 넘는 제품이 제안됐다고 한다. 시연도 봤고,직접 조작도 해봤다. 이 자리에서 느낀 것은 ‘나는 문외한’이라는 사실이었다. ‘무관심자’였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들의 제품명과 기능을 제대로 몰랐다. 뇌병변, 음성 출력은 무엇이고, 스크린 리더, 특수 키보드, 의사소통 기기는 또 무언가. 이 모든 것이 장애인에게는 길손의 지팡이 같은 필수 생활용품이었건만 기기를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마우스는 입을 활용해 PC 커서를 움직인다. 한번 숨을 내쉬면 클릭, 두번 내쉬면 더블 클릭이 된다. 골전도 무선음향 청취기는 뼈를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골전도현상을 이용한 청각장애인 보조기기다. 말 못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의사소통 보조기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스크린’ 위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배가 고파요” 등의 음성이 나온다.
최근에 또 국내 굴지의 통신업체가 운영하는 ‘IT 서포터스’를 취재한 적이 있다. 장애인 보조기기 사업과 비슷한 경험이다. 4백여 직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소리없는 혁명군’이라고 했다. 이들은 중증장애인의 거동과 재활을 돕고 있다. “희망이 생겼어요”라는 한마디가 이들을 뛰게 만든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하고 뿌듯한 일인가.
대기업을 참여시키자
필자는 평소 버스나 지하철에서 불편한 장애인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 본 것밖에 없다. 앞의 두 케이스는 ‘삶의 양면성’, 즉 ‘나의 두 얼굴’을 오버랩시키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장애인의 이 같은 불편을 가장 빠르게 해소시킬 방안은 무엇일까. 생활 보조기기를 최상급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일일 게다. 이런 면에서 중소 보조기기 제조기업과 대기업의 만남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 본다. 컨소시엄 형태의 사업 협력을 말함이다.
국내의 장애인 보조기기 생산업체는 영세한 편이다. 시장이 좁아 사업성이 적다고 말한다. 이러다 보니 장애인에 배려가 많은 외국 제품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애인의 소프트웨어 접근성을 봐도 선진 외국과 많은 차이가 난다. 미국의 경우 10년 전부터 통신법에 장애인의 SW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작 2년 전에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SW 접근성 지침을 개발해 내놓은 정도다.
외국 대기업들의 장애인 대상 활동은 꽤 활발하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SW 접근성 관련 웹 페이지를 구축했고, IBM은 장애인 관련 연구센터를 설립해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장애인을 위해 고민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장애인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기업으로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곧 다가설 실버시대를 맞아 후천적 장애인은 상당수 늘어나게 돼 있다. 대기업 장애인사업이 순수한 사회공헌사업은 물론 실버사업으로 적용되고, 수익으로도 귀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기업가의 최대 화제는 ‘나눔경영’이다. 기업에, 제품에 베품의 감동을 얹자는 뜻이다. 이래야 제품이 팔린다. 기업 전문경영인(CEO)이 시도때도 없이 양로원에 들르고,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는 일도 다 이런 맥락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는 다소 의식적이지만 사회는 이 행위가 모여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의 장애인 보조기기사업 참여는 사회 그늘진 곳에 대한 진정한 사회공헌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은 정부기관 주도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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