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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늦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빠를 뿐

당신들이 늦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빠를 뿐

 

지난 3월 18일 ‘함께 하는 세상’의 영화 시나리오 회의 3차 모임에 다녀왔다. ‘함께 하는 세상’은 장애로 인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살아온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후원해주는 복지관으로 봉천9동에 위치하며, 35명의 지적장애인이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주로 하청 받은 조립작업이나 우편발송 등의 작업을 하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그러나 이 작은 공간에서는 이제까지 총 4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2007년 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봉천9동]을 시작으로 [나의 친구], [WHY not], [젓가락 두짝]이 차례로 제작됐다. 이번 기획하는 영화는 5번째 작품으로 이미 제작된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부터 연기, 연출, 촬영, 편집을 모두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든다. 영화제작은 영화에 관심 있는 7명이 일주일에 한두 번 과외 활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영화 소재는 그들이 느끼는 세상의 소소한 일상이나 생활 그 자체이며, 시나리오 작업은 참가자가 일주일에 1회~2회 논의를 거쳐 만들어간다. 완성하는 데는 2~3개월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오늘은 다섯 번째 영화의 소재를 찾기 위해 서로가 본 영화와 드라마의 소감을 이야기하며 의견을 나눴는데 최근 상영한 [하모니]와 [국가대표]에 대한 소감이 가장 많았다. 그 중 참가자 곽수호 씨는 “나는 영화 속 국가대표선수들이 그들의 점프를 멋지게 성공시키고 세상에 스키점프를 널리 알리고 이목을 집중시켜서 좋았다. 이글을 외우지 못해 종이에 적어왔다”라고 말하며, “세상 사람들이 비인기 종목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 회의를 진행하는 미디어 교사 김영아 선생님은 회의에 참석한 다섯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각각의 의견을 좀 더 깊게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시나리오 작업 전에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전에 제작한 작품을 직접 보고 이야기의 흐름을 찾는 과정도 거친다.

참고한 영화는 ‘why not’으로 장애 극복 취업 성공기이다. 이 영화는 현재 한국 IBM인사부에 근무중인 김유라(지적장애인 3급)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6분의 이 영화는 서툴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후 참가자인 김춘식 씨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말고 용기내서 도전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정상인이나 장애인이나 노력하면 된다. 하면 되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소감을 말하며, “지적장애인이지만 장애인들도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화를 보고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발표하는 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고, 그렇게 3차 시나리오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시나리오 회의에 참관하는 동안 “내가 남들과 달라서 혹은 느려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늦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장애인들은 그들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 아닌 관심에 목마르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고 말한다. 작고 낮은 소리지만 깊고 넓게 우리 가슴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회의를 끝내고 짧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참석자인 조규준 씨는 “지금까지는 장애인들의 시각으로만 영화를 제작 했는데, 앞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불쑥 다섯 번째 영화에 단역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자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면서 우리와 그들이 다른 것은 우리가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그들은 항상 우리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 같다. 다섯 번째 영화를 통해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복지관을 나섰다. 봄바람이 조금 차갑기는 했지만 햇살이 따뜻해 옮기는 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