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박사급 인력 2000명 양성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기초과학 박사급 인력 2000명을 모을 계획입니다. 세계 수준의 아시아기초과학연구소(ABSI)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죠.”
민동필(서울대 물리학부 교수·사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초과학 육성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 온 인물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국제과학비즈니스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아 ABSI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8월부터는 한 해 1조50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고 6000여 명의 연구원이 소속돼 있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13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사령탑인 기초연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민 이사장은 “출연연은 국가경쟁력과 국부(國富)를 창출하기 위해 대학 연구실에서 나온 지식이 산업화되도록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며 “아직 국내 출연연이 수월성 측면에서는 국제 수준에 못 미친다”고 했다.
그는 또 “세계 1등이 되는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 인력과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ABSI를 설립해 ‘연구환경의 역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기초과학이 나아갈 큰 방향을 설정하고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복안도 제시했다. 세계적 권위자 50명으로 구성된 국제전문자문단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출연연과 대학 간 관계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한동안 갈등을 겪다 함께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한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상생 모델에 대해 그는 “다른 출연연에 권장할 만한 주목되는 사례”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지난 정부에 있었던 3개 연구회가 이번 정부에서 2개 연구회 체제로 개편됐다.
“독일은 기초과학 진흥을 담당하는 ‘막스플랑크연구재단’, 응용기술을 담당하는 ‘프라운호퍼재단’, 거대 산업기술을 담당하는 ‘헬름홀츠재단’으로 구성된다. 3개 연구회 체제는 우리나라 출연연구원을 독일의 시스템에 매칭시킨 모델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연구소들이 먼저 설립돼 있었고 어떤 체계에 더 맞는지 몰랐다. 방향은 맞았지만 궤도가 없었던 것이다. 각 연구소들이 어느 체계에 맞는지 현실적으로 하는 게 이번 정부의 역할이다. 대학이 지식을 창출하고 기업이 상품화를 맡기 위해 중간에 필요한 부분을 2단계로 나눈 것이다.
기초기술연구회쪽이 대학 쪽에 가깝다면 산업기술연구회쪽은 기업에 가까이 있다. 10년간 쌓인 노하우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연연은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면 국부창출을 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연구회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새 정부 들어 바뀐 부분은 무엇인가.
“변화를 준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결과를 보기 어렵다. 사람이 정보가 없으면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취임 후 직접 모든 출연연을 돌아다녀보니 이제 인정을 찾은 것 같다. 지난 정부와 좀 다르게 이번 정부는 수월성 중심의 실용주의가 목표다.
지난 정부도 과학에 투자를 많이 했지만 수월성 부분에서는 국가 경쟁력이 뒤져 있었다. 이 부분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현재 기초기술연구회 산하에 박사급 인력만 4000명이 있다. 연구원은 5500~6000명이다. 이들을 포함한 국가 조직이 수월성 위주의 성질로 바뀌는 것이다.”
-그간에도 톱브랜드 프로젝트를 포함해 출연연 개편에 대한 여러 가지 안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과연 잘된 적이 없다. 이번에도 과연 개편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만 하더라도 역사가 90년이 넘었다. 국가 연구기관은 튼튼한 반석위에서 성장해야 한다. 좋은 연구성과는 오랜 ‘회임’(懷妊)기간이 필요하다. 레이저만 해도 세계 인구보다 많다.
하지만 레이저가 상업화되는 데만 40년 걸렸다.
결과가 잘 안 나타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10년 이상 밀어준 연구가 없다.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몸통을 자꾸 옮겨 심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톱브랜드도 5~6년 뒤면 열매가 맺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주제를 잡는 ‘바텀업’ 방식의 프로젝트이다 보니 국민이 잘 몰랐던 것 같다. 국가 연구소다 보니 앞으로는 국민에게 내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연구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정열을 표출하고 싶을 것이고 이를 국가를 위해 푸는 방식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출연연구기관의 연구성과를 정말 국민에게 잘 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정부에서는 과학을 잘 알려야 한다며 연구소 별로 점수를 매겼다. 예전에는 어떤 과학자가 개미의 오른쪽 네 번째 다리를 연구하겠다고 하면 무시했었다. 그리고 굳이 그런 연구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국가 아젠다는 굳이 실용적일 필요가 없다. 과학적인 연구는 과학적 결과로 하면 이런 것들이 모여 국가경쟁력이 된다. 13개 출연연을 돌아다녀보니 그간 이런 것을 홍보하는 전문가를 두지 않고 있었다. 출연연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대중을 향한 홍보와 협력이 확실히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에서 글로벌화라는 용어를 참 많이 쓰는 것 같다. 단편적으로 보면 출연연 연구원 중에는 유학에서 돌아온 인재도 많고 해외에 논문을 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은데.
“글로벌화란 국제적인 관심을 끌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국제 사회 전체에 공감대를 가진 것을 말한다. 글로벌화란 협력이 필요한데 자기만 관심 있는 연구만 발표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연구 내용을 서로 주고받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제3의 영역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글로벌화는 다이내믹(역동적인)한 것이다. 우리 연구회 산하 출연기관의 한해 예산이 1조5000억원이다. 그중 국제 협력 부분에 3%가 들어간다.
서로 기술을 주고 배우는 정도의 수준이다. 글로벌화는 수월성과 같다. 버스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서 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도 운전석에도 앉아야 한다. 아직 우리가 운전하고 있는 차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최근 추진되고 있는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ABSI)이 그런 글로벌화의 모델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2개 출연연 중 기초기술쪽은 대학에 산업기술연구회 쪽은 기업에 가까이 있다. 하지만 현재 모델을 보면 대학과 연계도 거의 없고 기업 쪽에 가깝지만 기업과 연계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ABSI는 원래 모델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박사급을 포함해 고급인력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인구 1만 명당 박사학위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적다. ABSI를 통해 인력을 저축해야 한다. 현재 박사급 인력 2000명 정도를 유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박사급 인력을 대거 끌어와 일자리를 주고 전체적인 인재풀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왜 ‘세계’ 대신 ‘아시아’라고 이름을 붙였나.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재단은 산하 연구소들이 모두 막스플랑크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집중도 면에서 좋다. 우리도 출연연과 얘기를 해봐야 알겠지만 집중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겠다. 수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다. 국적을 따질 이유는 없다.”
-막상 해외에서 우수 인력을 유치해도 국내에서 살기 너무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사회 전체 문제다. 우리 문화가 너무 단일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생긴 문제다.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국내에 들어와 거주하고 생활하는데 불편
함이 없어야 한다. 그들의 문화까지도 함께 들여와야 한다.”
-국내 연구 풍토는 미국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편이다. ABSI는 어느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인가.
“굳이 벤치마킹했다면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를 본 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똑같은 모델은 어디에도 없다. 연구에서 독창성이 나타나려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모델은 물론 이미 다른 곳에서 벤치마킹할 수는 있다.
미국은 초대형국가 모델이다. 전 세계에서 인재가 모여든다. 독일과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환경이라고 하지만 그간 축적한 것은 우리와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같은 강소국 모델에서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이들 나라는 남들이 다하는 분야를 해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기 보다는 자기네 고유한 것을 찾아내서 산업화하는데 강하다.
스위스만 해도 화학공정부분의 논문 피인용도는 미국보다 훨씬 높다. 우리가 잘하는 반도체와 조선은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도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앞으로는 우리만의 독특한 과학 분야를 찾아내야 한다. ”
-해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우리의 수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언제쯤 가능할까.
“국민들이 노벨상에 거는 기대가 정말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학문적인 분야를 인정하기보다 돈 되는 쪽으로 인정해오다보니 잣대가 흔들리는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한참 지난 연구의 부정확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어떤 부분만을 집중해서 상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주식 투자처럼 어디 투자한다고 해서 돈을 벌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프라가 약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이제 인프라가 거의 갖춰지면 20년 뒤에는 상을 탈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일본의 사례는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 100년이 넘게 준비한 나라다.
우리는 해방, 아니 1970년대 비로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인프라에 힘을 쏟을 때다. 30년쯤 뒤 지금 우리가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정부는 기초 원천 기술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기초 기술이니 원천기술이니 용어에 혼란이 많다.
“먼저 과학자 입장에서 전체적 파이가 커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먼저 지식이 상품화되는 단계는 지식과 기술, 상품화 등 3단계로 나뉜다. 대학에서 만든 지식은 순수기초과학, 응용과학으로 나뉜다.
그 다음 단계인 기술은 응용과학과 맞붙은 원천기술과 이보다 진일보한 응용기술로 나뉜다. 기업이 맡고 있는 상품화는 제조기술, 그리고 생산기술로 구분하게 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부분이 지식이 그 정 가운데 단계까지 오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는 원천기술이란 말은 없다.
혁신적 기술, 기초과학에서 파생된 것이 바로 원천기술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은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를 35%까지 올리는 것이다. 정부와 학계가 그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부처 통합 외에도 출연연 기관장 전원 교체라는 극단의 방법을 사용했나. 많은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초기 우리 출연연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했다. 왜 바꿔야하냐는 얘기가 나왔냐는 배경을 살펴보니 출연연 자체의 역동성과 창조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버넌스를 흔들기보다 또 벽을 깨려고만 할 게 아니라 수증기처럼 에너지를 (자체적으로)뿜어내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짧은 진통을 뒤로 하고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사례처럼 최근 대학과 출연연의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매스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학문적 다양성이 커진다. 이런 다양성을 부각시켜서 학문간 융합을 꾀해야 한다. 일본은 연구소를 재편하는데 30년이 걸렸다. 지식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역동성을 필요로 한다면 경제와 같이 연착륙을 시켜야 한다.
처음 우려와 달리 KAIST와 생명연은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 좋은 모델을 찾았다고 본다. 또 학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안정성이다. 안정성이란 학자 한사람의 안정성이 아니고 세대를 아우르는 것이다. 젊은 피 수급도 안정돼야 한다. 연구소는 교육 기능이 약한데 반해 학교는 높다. 여기에 두 기관 간에 접점이 있다.
인수위 시절 만났던 서남표 KAIST 총장은 ”(KAIST와 생명연이)서로 비슷한 분야에 있었는데 벽이 너무 높다고 느껴진다“고 토로한 일이 있다. 다양성과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일이 그간 부족했다고 본다.”
-기초기술이니 원천기술이니 너무 위에서 내려오는 정의가 아닌가. 자율성을 손상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통독 후 독일은 동독에 남아있던 성격이 불분명한 연구소를 한데 모아 ‘라이프니츠 연구재단’으로 통합시켰다. 그런데 최근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이들 연구소들이 스스로 알아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출연연들도 국가 아젠다를 세워 함께 가면서도 톱브랜드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성 측면에서 톱브랜드 사업을 인정하는 것이다.
연구영역을 좁히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고 본다. 우리 출연연에서도 스스로 알아서 아무도 하지 않는 뛰어난 연구성과를 내는 경우를 보곤 한다.”
-최근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란 소리가 많이 들린다. 교수 시절 이 분야에 꽤 많은 관심과 활동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과연 두 분야의 융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이 주는 감흥이 예술인이 창작할 때 느끼는 감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조에 대한 희열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술과 달리 과학에서 희열을 잘 못 느낀다. 피카소가 상대론을 그림에 펼쳤듯이 과학의 감동을 예술작품이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술가를 만나 보면 과학적 사고방식을 궁금해 하곤 한다.
과학은 이성, 예술은 감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사고방식도 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고 그래서 두 분야가 서로 필요한 것이다. 과학의 장식물로서 예술은 결코 아니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사장으로 임기 중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연구에 대한 간섭을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자율성을 부수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안나온다. 지금까지 하향식의 사업이 계속됐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안정적이되 도전적인 연구환경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이번 정부는 기업최고경영자(CEO)적 감각이 있으니 이번에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한편에서 연구자와 정부 간에 중요한 것은 신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이어주는 대화창구 역할을 직접 하겠다. 이를 위해 연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지 조언하는 국제자문단을 만들 것이다. 국제자문단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과학자 50명으로 구성될 것이다.
이미 서울대 경우를 통해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면모를 확인했다. 12일부터 유럽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자문단 후보들을 만날 예정이다. 참고로 세계적인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재단은 90명이 넘는 자문단이 있다. 독일인은 소수이고 대부분 외국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말이라고 하면 원장도 꼼짝 못할 정도로 건전성이 있는 조직이다. 전체 구성하는
데는 1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김훈기 더사이언스 편집장 wolfkim@donga.com
정리=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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