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혁신체제와 과학기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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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의 확대에 의해 경제 성장이 좌우되는 ‘요소주도형 경제’에서 생산성 증대가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혁신주도형 경제’로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혁신체제의 변혁이 요구되었다. 둘째,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중심사회’의 실현을 비전의 하나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혁신주도형 경제의 실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역대 정부가 시도하지 못하였던 국가혁신체제의 개혁이 참여정부 개혁목표와의 일치 및 추진력에 의해 실현될 수 있었다. 셋째, 그 간의 분산형 과학기술정책 지배구조가 효율성 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를 시정·보완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종합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과학기술관련 부처의 기능 및 조직 재편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책과 타정책을 연계하는 통합형 정책지배구조로의 이행이 필요하였다. 2004년 하반기에 단행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지배구조의 변혁은 최근 OECD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위 제3세대 혁신정책모형의 모색과도 관계가 있다. 이것은 제1세대 선형혁신모형, 제2세대 상호작용혁신모형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일관성(coherency)을 강조하는 모형이다. 한국의 이번 개혁은 국가혁신체제의 전반적 개혁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정부부문의 개혁으로서 과학기술부총리제의 도입,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역할 강화,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설립, 과학기술관련 주요 부처의 업무, 권한, 예산 등의 조정이 그 골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은 그 귀추가 주목되는 국민적 관심사인 동시에 이미 OECD의 주목을 받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주는 함의가 심대하다. 국가혁신체제란 혁신을 담당하는 일국내의 모든 주체와 그들간의 네트워크 및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제도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혁신체제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부터 프리만, 룬드벌, 넬슨 등 진화론적 경제학자들과 신제도학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19세기 독일의 리스트의 예에서 보듯이, 그 원류는 훨씬 이전으로 소급된다. 흔히, 국가혁신체제론은 제1세대 선형혁신모형의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제2세대 상호작용혁신모형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지만, 이와 같은 견해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선형혁신모형의 시대에도 국가혁신체제는 그 나름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지 그 구조, 행태, 특성 등이 그 후의 국가혁신체제와 달랐을 뿐이다. 여기서 혁신의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혁신은 좁은 의미의 혁신과 넓은 의미의 혁신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협의의 혁신은 기술혁신을 의미하며, 주로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생산과 직접 연관된 지식의 결과물이다. 이에 비해 광의의 혁신은 기술혁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나 조직의 혁신을 모두 포함한다. 국가혁신체제에서의 혁신개념은 후자에 속한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의 국가혁신체제 변혁은 제 2세대 모형에서 제3세대 모형으로의 전환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상호작용혁신모형과 통합혁신 모형이 모두 관련되어 있는데, 그 정책방향은 이와 같은 패러다임 변화에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의 새로운 국가혁신체제는 이미 시작된 정부부문의 변혁으로부터 비롯하여 국가혁신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주체 및 영역으로 확대되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전제하에 앞으로 추진하여야 할 과학기술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의 과학기술정책 개념에서 과학·기술·혁신(STI) 정책 개념으로 근본적인 정책 개념과 틀의 전환이 요구되며, 과거의 과학기술(scientific technology)과 산업기술(industrial technology)의 영역구분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을 택하여야 한다. 즉, 과학·기술·혁신의 모든 차원과 영역이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상호간의 연계 고리를 강화하여야 한다. 과학기술부는 국가의 미시경제정책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정책을 비롯한 타부처 정책과의 연계도 강화하여야 한다. 과학기술부가 전략 및 정책의 기획·조정·평가 기능을 담당하고 과학기술부의 일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이 현장 중심의 정책과제들을 담당하는 현 체제가 정착되려면,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총괄기능이 확립되고 강화되도록 지속적인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의 국가혁신체제는 정부영역의 개혁에 중점을 둔 것으로서 가장 취약한 대학 및 공공연구소의 질적 제고에 역점을 두어 보다 균형잡힌 혁신체제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일부 영역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면 체제의 전반적인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셋째, 국가혁신체제는 지역(지방)혁신체제의 발전을 포함한다. 국가 R&D 자원의 60퍼센트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한 과거의 혁신체제는 국민적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왜곡되고 비효율적인 체제였다. 이의 시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공공연구소의 물리적 이전과 같은 방법보다는 R&D 자원의 배정 및 각종 유인책의 적용으로 기업, 대학, 연구소, 연구인력 등의 자발적 이전을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넷째, 세계적 지식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국제화 및 국제협력 정책을 강화하여야 한다. FTA전략과의 연계, 점증하고 있는 첨단기술 통상마찰에 대한 적절한 대응, 기술유출의 방지도 시급하다. 정부는 공공차원의 기술협력, 민간은 전략적 기술제휴에 주력해야 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과학기술국제화 여건 및 기반구축에 대한 자원투입을 획기적으로 증대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혁신체제의 발전 및 과학기술정책의 효율성 제고는 ‘신뢰의 네트워크’라는 사회자본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통합(integration)과 조화(harmonization)에 의한 일관성(consistency)을 기저로 하는 제3세대 국가혁신체제와 과학기술정책의 성공은 어느 경우보다도 사회통합을 뒷받침하는 사회자본의 탄탄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 부처간에, 혁신주체간에, 지역간에 있을 수 있는 불신과 분열 대신 상호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활용되는 과학기술중심사회와 혁신주도형 경제의 실현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부주도형 과학기술정책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민간이 오히려 주축이 되는 혁신체제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