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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샘터........о♡/세계역사·문화

덕수궁 이야기





민비 시해이후 高宗은 언제 어떻게 가까운 신변에서 亂이 일어날지 몰라 심한 노이로제에 걸려있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옮겨온 후에도 밤만되면 부스럭 소리, 가랑잎 구르는소리에도 과민하여 새벽까치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고 모시던 상궁들이 전했다.
 
밤이 무서운 皇帝였다.
 
어느날 당시 한성판윤(서울시장)이던 李采淵(이채연)을 불러 "모든 變事禍亂(변사화란)은 밤에
일어나는 법이니 宮의 밤을 낮같이 밝히는 전기사업을 하라,"고 어명을 내린다.
그 이전에 高宗은 이미 경복궁에서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에게 직접 주문하여 궁안을 밝히는
電燈(전등)을 설치한 적이 있었는데 1900년에는 덕수궁에도 전기를 켜게 되었던 것이다.
 
발전기는 지금의 大漢門 북쪽, 즉 지금의 시청에서 보이는 동쪽벽에 붙어있었는데 덕수궁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시청방향으로 10여m의 위치에 당시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던 장소로 추정된다.
(지금의 덕수궁 동쪽벽은 2번에 걸쳐 안쪽으로 밀어옮긴 것임)
 
이 전기소안에 25kw의 직류발전기를 설치, 궁안 도처에 무려 600여개의 아크등을 달았다.
 
始燈式이 열리던 날 내외귀빈을 초대해서 성대한 잔치를 벌였는데 당시 이 잔치에 초대받았던
당시 法語(프랑스語) 학교 교장 '에밀 마텔'의 회고담에 이 날의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1900년 봄. 서대문안에 살던 '코온'이라는 서양사람이 사들인 발전기계는 大門에 붙여 재판소로 가는 길 모퉁이에 붉은 벽돌집을 짓고 그 속에 설치했다. 전기를 처음 켜던 날 임금과 중신들,각국 외국공사관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는데 나도 초청받아 갔다.
 
식장안에 붉고 파랗고 노란 오색등이 현란하게 켜져 있었는데 연회가 갓 시작하려 할 즈음
전등이 꺼져 암흑천지가 됐다. 발전기 고장인 것이다.
당황한 '코온'씨가 달려가서 전기소의 기계를 만지고 그 전기소 지붕까지 올라가 전깃줄을
살피고 하는 법석을 떨었지만 전기불은 끝내 들어오지 안았다.
 
양초를 마련하는 30분동안 성냥불만 켜대고 있다보니 잔치는 맥이 빠지고 말았다."
 
 
이 덕수궁 전기소가 어찌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고 덜덜거렸던지 덕수궁 전깃불을
'덜덜불'이라하고 정동골목을 '덜덜거리' 또는 '덜덜골목'으로 불러 地名으로 오래 이어져 내렸다.
 
경복궁 향원정 못물로 수력발전을 하여 침전인 건청궁에 처음 백촉광을 켠 것이 1887년의
일이었는데 어찌나 꺼지고 켜지기를 멋대로 하고 또 촉광이 약했다 강했다 반복하기를
백수건달같다하여 건달불이라는 별명을 얻었었고 또 發電機를 냉각하는 과정에서 물이 더워져향원정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여 蒸漁亡國(증어망국)의 조짐이라는 여론이 일어 결국
경복궁발전소를 철거한 적이 있었는데 이 덕수궁 전기소는 圓丘壇(원구단: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으로부터 大安門(지금의 덕수궁正門인 大漢門)을 거쳐
임금에게 통달되는 신성한 天命을 문간에서 덜덜거리며 위협하기에 나라안에 변란이 많다는
여론을 감당할 수 없어 철거당하고 만다.
 
日帝때 지금의 태평로길을 만들 때 덕수궁벽을 뒤로 옮겼고 60년대말(67년쯤?)에 人道확장
목적으로 다시 뒤로 옮겼으니 전기소의 위치는 지금 시청방향의 아스팔트위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http://blog.daum.net/hb-slbk/